안녕하세요 여러분, 벌써 2023년도 하루하고 쬐금 더 밖에 남지 않았네요. 제가 지내는 곳은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는데요. 다들 오늘 하루는 잘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한 해가 끝나기 전 꼭 마무리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지도요. 저는 매년 마지막 날 블로그에 연말 결산 포스팅을 느긋하게 작성해오곤 했는데, 이번주는 연말 맞이 몰아친 일정과 마감들에 헤매이다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네요.. 과연 제가 내일 업로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적은 관심 부탁..

아무튼 올해의 마지막 레터는 문득 손편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평소와 달리 조금씩 뜸을 들여가며, 차곡차곡 쌓인 메모장도 꺼내보고 문장도 두어번 곱씹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더 이상 개인적인 성취나 성장담론이 무쓸모하게 느껴졌고 반복해서 벌어지는 우리 세대의 어떤 비극과 재난 앞에 무책임한 어른들을 원망하고 탓하는 것도 이젠 지겨워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우리가 다른 흐름을 만들자. 고 말을 꺼낸게 출발점이었죠. 이틀 만에 모여든 마흔 여분의 응답을 통해 분명한 시그널을 받았고, 하지만 동시에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려는 일이다보니 확신이 필요해서 두 어달 정도 더 많은 이론을 파고들고, 가설을 세우고, 작은 단위로 실험하고 검증하기를 반복했어요. 여러분의 마음과 동력이 쉽게 소진되지 않도록, 잘 받아낼 수 있도록. 그러다 이제는 좀 해봐도 되겠다, 는 생각이 들자마자 즉흥적으로 첫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린 게 12월 8일. 그리고 오늘을 기점으로 함께 수집한 '좋은 어른의 기준'은 총 160가지, 멤버십은 200여명을 돌파했어요.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에서 우리가 되찾고 싶은 가치와 철학을 재발견-정립하고, 같이 '어른이 되자'는 제안 - 그러니까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제안에 먼저 반응해 모여든 멤버들과의 그라운드를 넓혀볼 거예요.

이런 계획을 한창 설명하고 있다보면 누군가가 묻기도 해요. 너무 필요한 일이지만 선례도 거의 없고 어렵잖아. 뭘 믿고 돌진하는거야? 그러게.. 싶다가도 사실 확고한 답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가 겪은 사랑의 힘을 믿어요. 언젠가 매우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혼자 살아남기도 급급했고, 그랬기에 못난 어른들이 설계한 삶의 방식을 착실히 따르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냐고 합리화했던 내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좋은 어른'이라는 지향을 다시 세우고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도 결국은 다 사랑의 힘이었다는 걸 알아요. 2년 전에는 이런 일기를 썼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할머니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사람들은 사랑할 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가끔, 심지어 대개, 원래의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니 끝끝내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것도, 삶의 기준과 철학을 다시 세우고 이 방식으로 돌파해보기로 마음 먹은 것도 결국은 지키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사랑이 만드는 변화의 힘, 강인함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직접 겪어보았으니까요.

하지만 혼자만의 만족도, 우리 몇몇만의 머무름도 아닌 하나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선 전략과 동력이 필요해요. 지난 타운홀에서 가볍게 소개했는데요, 우선 지금의 전략은 이거예요. "아름답고, 영리하게." -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누군가 해하지 않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러나 무력하거나 무용하지 않고 영리하게 증명해낼 것. 이게 지금의 제가 선택한 방식이에요.

이 방식대로 우리가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주시고 또 함께해주세요.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이제 분명히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아서 왠지 가뿐한 마음이 든답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했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 재미난 일 많이 벌여봐요. 다들 아프지 말고, 따뜻한 기운으로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라요!

유난한 사랑을 담아, 소희